아이디얼러지, 공리, 브랜딩, 식별띠

이제야 깨달았다.

깨달음은 언제나 늘 갑작스럽고 무언가를 돌이켜보는데에서 온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을 바꾸기보다는 나를 바라보고 관점을 바꿔보자는 고리타분한 내 글에 달린, 누군가의 고마운 댓글로부터다. 그 댓글 속엔 ‘진화’란 단어가 있었다. 하루 종일 그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머릿속에 박힌 그 단어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무슨 미련이 있어 그렇게 나에게서 떠나려 하지 않는가.

연관 검색어가 떠오르듯, 떠나지 않은 ‘진화’란 단어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소환했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식상한 표현이 그 상황을 잘 말해줄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나는, 직장인은 ‘성장’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 생각을 크게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운명은 직장(회사)도 다르지 않다.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결국은 ‘생존’을 위해서다. 지지고 볶아도, 월급이 작다고 불평해도,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해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이유다. 상부상조를 한다고 한들, 역시나 약자는 직장인이다. 오늘이 고되고, 내일이 불안하다. 직장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나가야 한다는 건,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또는 의도치 않게 직장을 박차고 나오게 되더라도 ‘생존’을 이어갈 수 있도록 수많은 직장인들은 ‘성장’을 갈구한다.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만큼 ‘성장’은 직장인에게 있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동기를 부여해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시라도 위로하니까.

성장엔 ‘한계’가 있다.

우리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성장’에 목말라 있냐면, 직장에서 전년 대비 성과가 좋지 못할 때 ‘역(逆) 성장’이란 말을 쓴다. 문맥상으론 ‘퇴보’나 ‘정체’, ‘위축’이 맞을 테지만 전쟁 이후에 생존을 위해 각박하게 달려온 우리의 과거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소위 말해 회사가 잘 나갈 때 ‘성장’이란 말은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흥망성쇠’란 존재하는 모든 것에 통용된다. ‘성장’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크지만, 어찌 되었건 ‘역성장’이란 말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성장’엔 끝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자. 영원히 자랄 것 같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죽음을 향해 ‘퇴화’하고 있지 않은가. 생물학적 관점이 아니라도, 우리는 스스로 자기 계발을 통한 ‘성장’을 도모한다. 하지만 끝끝내 ‘슬럼프’란 녀석을 만나 좌절한다. 신호 없는 고속도로를 쭈욱 달려가며 성장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우리는 결국 트래픽을 만나거나 국도로 접어들어 신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쉬어가거나, 물러날 때가 있는 것이다. 인생은.

‘진화’는 ‘성장’을 포함한 더 큰 개념이다.

직장인의 하루를 돌아보자.

우리 맘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불가항력적인 것들로 가득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자 ‘성장’이라는 노력을 한다. 그 이면엔, 지금 내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은 내가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더불어, 내가 ‘성장’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천만의 말씀.

아무리 자기계발을 통한 ‘성장’을 한다한들,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맞이하는 모든 상황들을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없다. 대신, ‘신’은 우리에게 ‘적응’이란 선물을 주었다. 주변을 바꾸지 못하면 내가 바뀌는 것. 이 ‘적응’이란 개념은 인류의 역사를 혁신적으로 바꿔왔고, 다양한 문화를 양산했으며 지금도 펄떡이며 살아 있는 생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의 한계’를 만났을 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다. 슬럼프가 왔을 때 패배감을 느끼기보단 잠깐 쉬어간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합리화. 직장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바꾸기보단 신경을 덜 쓰기로 한 마음가짐.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얻게 되는 선물과도 같은 수많은 역량들. 그러고 나서 결국,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진화’라는, 너무도 익숙해서 그저 지나치려 했던 단어가 지금까지 나의 생각을 모조리 뒤집어 놓았다. 즉, 난 지금까지 ‘성장’을 해왔던 것이 아니고 ‘진화’를 해온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읽지 않고 있는 다른 모든 직장인들도 그러하다.

‘적응’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더 먼 훗날의 ‘승리’를 위한 ‘작전상 후퇴/ 정지’라고 보면 어떨까. 나에게 다가오는, 내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들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진화’는 ‘적응과 성장’을 포함한 더 큰 개념이다. 영원히 ‘성장’할 수 없는 우리는, ‘성장’과 ‘역성장’을 반복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버리고, 때로는 ‘역성장’하거나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영원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성장하지 못할 때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적응력’을 발휘하여 잠시 뒤로 물러나 종합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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