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β티타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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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0일부터 쓴 안경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책 한권 분량의 일기장이라지만, 공책 하나를 6년에 걸쳐서 쓴 적은 또 처음(근데 사실 올해 안에 이 일기장을 다 쓸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매일매일 쓰려고 정말 노력했을 때에는 공책 하나 끝내는 데 반년도 걸리지가 않았다. 요즘엔 거의 한달에 한번 정도 쓰는 것 같다.

일기를 쓸 때가 마음이 제일 편하다. 그런데 최근 2년은 일기를 거의 한달에 한번씩 쓰다보니 생긴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일단 주변에 일어난 사회 뉴스 같은걸 잔뜩 써제낀다. 그 전에는 사회 뉴스보다는 나 라는 개인의 신변잡기와 심경과 생각과 철학 등을 주로 정리했다. 아마 일기를 쓰는 텀들이 길어지다 보니 나름대로 중간중간 기록의 차원으로 했던 일 같다.

오래전에 쓴 일기를 읽어보면 과거의 나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때 당시에 기록했던 사회 뉴스를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시절 뉴스 때문에 묘해지는 게 아니라, 그 시절 뉴스를 대하는 과거의 나의 태도에 대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정말 사람이란 끊임없이 변하는구나, 라는 걸 이럴 때 느낀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과연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변했다.

사람 쉽게 잘 안변해, 라는 말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는 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단 말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걸 핑계로 본인도 굳이 변하려고 하지 않는 고인물 같은 사람은 많이 기피하는 편이다.

오늘 제일 감명깊게 본 뉴스는 네덜란드의 오션 클린업 사가 만든 해양 플라스틱 수거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태평양을 향해 드디어 실전 출항했다는 것이었다. 칸투칸에 글을 쓰면서도 자주 언급했지만 미세 플라스틱과 해양 플라스틱 문제가 실제로 심각해지고 있는 차에,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일을 한 사람의 염원과 열정이 드디어 실행하게 된 것이다.

미래에는 과연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까. 알수 없지만 아마 미래에 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이 감명깊은 뉴스보다도 뉴스에 감명을 받은 나를 보며 재밌어 할 것이다. 그래 너 임마, 뭘 쪼개.
군대 시절에도 나는 일기를 끊임없이 썼다. 오히려 남는게 시간이기 때문에 더 집착적으로 거기에 매달렸던 것 같다. 당시엔 문예창작과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와의 접점을 더 놓치고 싶지 않아서 미친놈처럼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던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미친놈처럼이란 말은 단순히 읽기와 쓰기의 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실 양으로 치면 군대에서 책을 읽어봐야 얼마나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썼겠는가. 내가 말하는 미친듯이란, 잠을 줄여가면서, 라는 이야기다.

왜 베타티타늄인가

나는 지금은 잠을 줄여가면서 무언가를 딱히 하려하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았을때의 컨디션 저하를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마감은 논외로 한다)이다. 그런 나는 군대에서 GOP에서 밤새 경계를 서면서도, 월광이 100%가 된 보름달 아래서 달빛에 노트를 비춰가며 손바닥만한 수첩의 한페이지라도 뭔가를 기록하고 써나갔다. 시놉시스 같은 것을 쓰면서 창작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읽어보면 그 시놉시스는 정말 어디 화장실 휴지로도 못 쓸만한 수준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그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시절 경계근무를 서면서 군복에 총을 들고서, 무료한 한밤중에 달빛을 받아가면서 뭔가를 끄적끄적 써내려가던 내가 떠올라서 짠해지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사실 읽기보다 쓰기를 훨씬 더 많이 했다. 아직 보관하고 있는 군시절 수첩이 한 8개 정도 되려나. 거기다 친구들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까지 다 포함하면 거의… 나중에 심심해서라도 한번 정리해볼까 싶다. 내가 군대에 있을동안 글자수를 도대체 몇 개나 썼을지.

그 와중에도 읽기에 대한 추억이 있기는 있는데, 이등병 시절 너무 선임들이랑 있는 게 괴로워서 주말마다 자는 시간을 쪼개 가지도 않는 교회(심지어 나는 불교)에 종교활동을 가서 성경을 무진장 읽었다. 목사님 말씀이 재밌기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사실 군대에서 만난 목사님들은 묘하게 말주변들이 잘 없으셨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이것도 좀 슬픈 기억이네. 왜 군대에 오는 목사님들은 다 하나같이 재미가 없는 분들이셨을까… 좌우지간에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그와중에 잠을 쪼개서 성경을 읽은게 내 인생 최초의 성경 독서였다. 읽다보니 재미없는 부분 건너뛰고 재밌는 부분만 읽게 돼서 고린도 전서만 계속 읽은 건 조금 비밀이지만.

아이웨어는 패션의 기능도 하지만, 메디컬 제품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패션의 기능은 선글라스를 선택하는 첫번째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안경의 디자인과 이미지는 당신이 시선을 맞추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은막의 기능을 합니다. 당신의 눈빛, 즉, 당신의 이미지를 보조합니다.

조금 계급이 올라서 여유가 생긴 상병장 시절에는 밖에서 사 온 소설도 무지하게 읽어댔고(SF명작인 <노인들의 전쟁>을 이때 처음 읽었다), 왠지 모르게 우수 학술 도서나 논문 같은게 군대 도서관에 꽂혀 있으면 읽기도 많이 읽었다.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같은 명저서도 군대에서 독파했고 <민담, 상징, 무의식> 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상징과 무의식 코드를 분석한 책은 나중에 다 읽고나서 보니 순수한 학술 논문이었다. 역기 들면서 몸만드는 데 재미를 조금 붙인 이후로는 후임이 사온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쓴 거의 400페이지에 달하는 <보디빌딩 백과>도 독파했다.
일기를 쓰는 횟수도, 책을 읽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은 뭔가 그때만큼 잠을 줄여서 해보려는 절박함이나 미침이 없는 걸까? 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근데 꼭 그렇게 볼수만도 없는 것이 요즘엔 하룻동안 쓰고 읽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비중이 너무 크다. 탱고라든지 태극권이라든지.

그 탓도 있지만 솔직히 요즘엔 일기를 쓰는 것보다도 읽는 게 더 재밌어졌다. 심하게 얘기해서 일기라는 건 나중에 꿀잼으로 읽어보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조차 든다. 원래 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전력으로 나의 사유를 투영하고 기록하고 발전시키거나, 글쓰기를 연습하거나 하는 차원에서였지만. 요즘 와서는 일기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은 훗날에 다시 읽을 때라는 걸 깨닫고, 내가 지금까지 쓴 일기를 몇 번이고 읽는게 재밌을지 아니면 계속 일기를 써가는 게 재밌을지 저울질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기를 읽는 게 재밌어진 이유도 과거에 내가 일기를 아주 열심히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읽을만한 일기의 양이 꽤나 많이 쌓인 것 뿐이고. 결국 나중 돼서도 일기 독서를 꿀잼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지금도 일기를 아주 열심히 써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와중에도 일기 쓰기는 양반인 편이긴 하다. 내가 정말 일기를 오래 안썼구나 싶어서 제일 최근에 쓴 일기 날짜를 확인해보면 거의 한달 텀이었다. 아무리 일기를 오래 안썼어도 한달을 넘어 두달만에 일기를 쓰거나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 기억에는 거의… 아니 아예 없는 것 같다. 아마 일기를 두달만에 쓰거나 한 기억이 있다면 꽤 충격적이었을텐데, 이번엔 한 석달 안 썼으려나 하고 펼쳐보면 여지없이 한달 텀이었다. 아마 머릿속에 일종의 경보기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일기를 안 쓴 지 한달이 넘어가면 울리는 경보기가.

하긴 오죽 일기를 열심히 썼어야지. 한창 열심히 쓸 때는 한 2주일 넘게 매일 쓰다보니 어느날 딱히 일기에 쓸 말이 없었다. 사람이 하루하루 매일 무슨 사건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사유라는게 어느날 꽤 모양을 갖춰서 정리되면 그걸로 한두달이 가지 다음날 급격한 심경의 변화가 생기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고보면 일기는 그냥 쓰고싶을 때 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다만 독서는 이런저런 일에 치여서 안 한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당장 읽으려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쌓아둔 1페이지도 안 넘긴 책들이 몇권이더라… 절망적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세 봤더니 33권 정도가 된다. 시간 날 때 캐리어에 책만 잔뜩 채운 채로 독서 여행 같은 걸 떠나 전부 읽어버리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독서 여행이 아니라 독서 이민 정도는 가야될 것 같다. 제주도 한달 살이로도 안될 분량인 것 같은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왕복으로 타면 좀 가능하려나.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일기쓰기가 좀 방만해진 기분도 있다. 급한건 핸드폰 메모장에다 쓰는데, 나중에 그걸 활자로 옮기거나 정리가 잘 안되는 탓이다. 내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메모장에 쓰고 인터넷 검색하던 것을 캡쳐하는 양이 엄청난데, 나중에 보면 거의 자료의 양에 파묻히다시피 난장판이 되어서 손바닥만한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망연자실해진다. 그래서 결국에는 날을 잡고 작은 디지털 화면에 있는 글자들을 일일이 손글씨로 써가며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조금은 중2병 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손글씨로 썼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글을 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정확히는 글의 완성이 아니라, 제대로 글을 써가는 과정이라는 느낌이다. 인쇄된 글이 나왔을 때 비로소 완성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손글씨로 쓰는 과정이 없었을 때의 글은 다시 찾아 읽는 일이 드물다.

일기장의 시작 날짜가 2012년 10월 30일. 한달이 지나면 정확히 6년이 된다. 일기장을 쓰면서, 특히 이 일기장을 쓰면서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군대 전역 후 다시 대학교에 들어간 게 2011년이니, 작가로서의 자각이 없던 풋내기 대학생 시기부터, 졸업하고 작가로서의 자아를 가진 후까지의 과정이 전부 담겨있다. 아마 이 일기장을 다 쓰고 나면, 정말로 독서 여행을 떠나야 할 것만 같다. 가서 밀린 33권의 책을 전부 읽은 뒤에는, 이 다 쓴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해볼 생각이다.
아마 살면서 손에 꼽게 재밌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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