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힘이 없다.
특히 현실에서의 정치력은 전무하다.
그러나 예술은 다른 식으로 기능한다. 예술은 미래를 그리고, 제시한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헤집어 놓는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쩌면 영영 풀리지 않을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던진다. 예술은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한다.
내가 처음 예술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 먹었을때의 목표는 현실에서의 힘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연극을 본 관객이 인생이 바뀌었으면 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랬다. 혹은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랬다. 혹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기를. 그게 내가 힘없는 예술을 하는 방식이었고, 바램이었다.
현실과 예술에 대한 관계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플라톤은 ‘시인들은 위험한 존재들’ 이라며 아테네에서 몽땅 추방하자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했다. 정치인들은 항상 예술을 두려워했다.
반면 자본가들은 예술에 투자를 하고, 자기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때로는 자신들을 포함한 상류층을 조롱하는 예술에까지 후원했다. 메디치 가문이 그랬고, CJ와 롯데가 그러하다. 자본가들은 예술을 이용했고, 때로는 자본의 힘으로 그것을 컨트롤했다.
한쪽에서는 두려움에 떨어 없애려 하고, 한쪽에서는 녹을 주는 사람을 비판하고 조롱해야 하는 인생. 예술가의 삶이란 재밌는 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이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연명해 살아갔다.
그리고 극히 일부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정치인도 자본가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 모두의 마음과 역사에 이름과 그 영혼을 남기는 것. 그 자그마한 여지가 있으니,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가면서도 ‘재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