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걸음의 카오스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 빼어난 소설가로 유명한 이 두 작가에게 또하나 잘 알려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달리기를 예찬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주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아주 정적이고 인도어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언뜻 ‘러너’와 ‘소설가’는 잘 매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외로 소설가 중에 취미든 본격적으로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소설을 쓰는 다른 친구도 마라톤을 하고 있고,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몇 번이나 달리기를 권유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왜 작가, 특히 그 중에서도 소설가들이 달리기에 매혹되는 것일까.

소설쓰기란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좋은 아이디어나 시놉시스가 나오면 그 다음은 금방 쓰일 것 같지만 사실 그때부터가 정말 지루하고 고된 싸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작가는 ‘뭘 쓸지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정작 초고를 쓸 때는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고통스럽게 행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대놓고 말해서 달리기는 별로 재미가 없는 운동이다. 고독하고 힘들며, 그저 같은 움직임이 반복될 뿐이니까.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고,  특별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며,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주로 견디는 것이 달리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러너도 기가막힌 기술로 한 번에 끝낼 수 없다. 한 걸음 다음에 두 번째 걸음, 이게 달리기의 유일한 방식이다.

걷기와 달리기는 강도를 빼면 서로 비슷한 운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속성이 매우 다르다. 걷기는 다른 이와 함께할 수 있고 같이 걸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 외롭지 않다. 혼자 걸을 때도 주변을 보거나 구경하면서 걷게 되기 때문에 풍경도 걷기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달리기는 사람마다 페이스가 다르고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면서 뛴다는 건 사실상 매우 어렵다. 주변 풍경 역시 빠르게 스쳐가므로 어떤 아름다운 것도 트랙 밖에선 그저 흐릿해질 뿐이다. 걸을 때는 생각도 많이 할 수 있는 반면 뛸 땐 너무 힘들어서 ‘괴롭다’는 마음만 지배적이다.

열심히 달리다보면 옆에서 달리는 사람도, 풍경도, 희미해지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롸 내 숨소리만 점점 커진다.

이렇게 고독하고 힘든 짓을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고 결승점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지치는 내가 싫고 그래도 끝이라는 게 있어서 일단 거기까진 가야겠고, 그런 마음으로 달리는 것이다. 결승선을 넘으면 성취감이 폭발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저 ‘이제 안 뛰어도 된다’는 안도감만 있을 뿐이라고 하루키는 말했다. 기쁘지 않다면 왜 달려야 하는지 모르겠으면서도 어쩐지 이해가 된다. 소설 쓰기도 달리기처럼 지루하고 외로우며 지독히 끈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건 비단 소설가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기본적으로 이런 성질을 띄고 있으니 말이다.

시원하게 달리고 나면 머리가 깨끗해지고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숙련된 러너에게도 달리는 일은 매번 힘들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작가에게도 소설쓰기는 공포스럽다. 달려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막혔던 문장은 결코 저절로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머리가 아득해질 때까지 달린다.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와 체력을 다지고 끈기라는 굳은 살이 마음에 박히게 만들기 위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하얗게 비어있는 공간을 이야기로 채워 완성시켜야 한다. 이건 몹시 아득하고 막막한 작업이다. 정해진 도착점은 분명 있는데 그곳에 다다르기까지가 너무 멀고 지루하달까. 다른 방법이나 수단이 있으면 시도해보기라도 하련만, 가는 방법에 아무 요령도 없고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마치 장거리 달리기와 닮아있다.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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