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우리는 지운다, 출발지 혹은 목적지를

4년 전의 생비스, 결정적인

그러니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 이러한 ‘힘 빼기의 기술’을 적용해봐야 한다. ‘기술’이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대상을 다루는 방법이나 능력을 포함한다. 즉, 수단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알맞을 때에 알맞은 정도로 구사하는 것.

악보를 한번 보자.

악보의 복잡한 기호들은 결국 화음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화음은 높낮이로 완성된다. 삶에는 그렇게 위아래를 오가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말한다. 모든 음표가 항상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불협화음은 우리 삶 어디에나 존재한다. 내가 제 소리를 내도 다른 음표가 치고 들어와 이상한 소리를 낼 수도 있다. 반대로, 잘 잡혀진 화음에 나의 음표가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겠다.

리듬은 ‘힘의 조절’과 음표 사이의 ‘쉼’으로 완성된다. 강박이 있으면 약박이 있다. 그것 자체로도 리듬은 완성된다. 인생의 과정에서 강박과 약박은 구사되어야 옳다. 그리고 중간 중간 놓인 쉼표는 보다 듣기 좋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기술이다. 적재 적소에 놓인 음표. 강박과 약박. 그리고 사이 사이에 있는 쉼표까지. 높낮이와 힘의 조절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는 우리의 이상향이다. 그것을 만들어내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그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다시, ‘힘의 조절’과 ‘쉼’이 필요하다. 항상 힘을 주고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힘을 주는 또 다른 원인은 바로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에 실패를 했을 때, 자책의 크기보다 상당한 건 바로 남의 시선에 보일 나의 초라함이다. 그 시선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그 긴장의 크기 이상으로 힘을 주기 시작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곳. 그래서 많은 침략을 당해 뭉칠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운명. 공동체의식이라는 집단 무의식은 우리 피에 흐르고 있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은 안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도의 차이. 다시금 자신이 ‘힘을 주고 살아 갔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니, 자신이 이제는 남의 시선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의식하지 않을 상황이라면, 이젠 힘 빼기의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좋겠다.

어려운 사람과의 식사자리에서 우리는 말한다. 소화는 될까?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 힘을 줘서다. 긴장을 하고 불안해서. 혹시라도 흠잡히진 않을까. 실수 하진 않을까. 그런 자리에서 그저 힘을 빼라고 하면 이것 또한 부담이다. 힘을 빼지 않는게 더 편한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의식하지 않고 힘을 빼고 싶다면, 먹는 밥에 온전히 집중을 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맛이 느껴지고 그 어려운 사람과 음식에 대해 맛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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