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주워온 조개에 얹어

늘 약간의 취기와 허무가 섞여있던 여행의 기억

‘여행다운 여행’을 가지 못한 지 꽤 되었다. 학생 때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적당한 순간마다 생활의 마디가 손에 잡혔다. 개강과 방학, 예상치 못한 휴강이나 부지런한 친구들이 으레 떠나는 해외연수 같은 그런 마디, 마디들. 그리고 그런 마디들을 맞이하면 별 생각 없다가도 뭔가 하고 싶은, 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대책 없이 들이부은 맥주 거품처럼 차올랐다. 한 달 동안의 무전여행, 여자 친구와 새벽에 부리나케 떠난 1박2일 여행, 친구와 드라이브하다가 훌쩍 떠나버린 울산 여행 등등. 그 시절 나의 여행들이란 보통 그렇게 넘쳐흐른 마음의 거품을 수습하려 무작정 떠난 것들이었다.

그래서 늘 약간의 취기와 허무가 섞여있던 여행의 기억. 그때의 나는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며,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특히나 ‘대작가’, ‘천재 시인’이 되길 갈망했던 그 시절엔, 내게 여행이란 ‘멀고 낯선 곳에서 뮤즈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했다. 뭔가 기행을 해야만 뮤즈가 찾아와줄 거라는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렸던 셈이다. 해서, 여행을 떠날 때는 일탈의 즐거움에 취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아무 변화 없는 스스로에게 허무를 느꼈다.

특히 무전여행을 다녀와서는 그 증세가 심각했다. 어쭙잖은 구도자 행세를 하려는 마음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삶에서 그 정도의 이벤트라면 무전여행 전과 후가 같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여행 후에도 그저 나일뿐이었다. 삶의 이치나 진리를 깨우친다거나, 길거리 노숙 중에 문득 뮤즈가 찾아와 문학적 영감을 전해주지도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그저 여느 이십대처럼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게 다였다. 내가 거창하게 믿었던 ‘여행다운 여행’의 결말이란 건.

지난 주말에는 여자 친구와 바람이나 쐴까 싶어 송도로 향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수 있겠지만 이곳은 부산이고, 부산은 자꾸 걸어 나가면 어찌됐든 바다가 나오는 곳이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곳은 광안리 바닷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이고, 해운대는 굳이 찾아갈 일조차 없을 정도로 바다가 익숙한 우리 커플이 송도를 향한 이유는 순전히 케이블카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정한 봄 날씨를 면전에 두고 집을 나서지 않는 건 뭔가 너무 퉁명스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는 1003번과 26번 버스를 갈아타며 암남동 주민센터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5분쯤 걸어 내려가니 송도 해수욕장이 멀리서도 맑은 제속을 원히 드러내는 게 보였댜.

별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송도 해수욕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가슴 설레는 곳이었다. 광안리나 해운대가 커다란 백화점이라면, 송도 해수욕장은 깔끔하고 아담하게 차려진 개인 카페 같았달까. 송도 스카이워크는 그다지 높지 않아서 ‘스카이’라는 이름이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그 덕에 하늘을 걷는다는 허무맹랑한 취기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발밑에 넘실대는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20분쯤 산책을 한 뒤, 우리는 송림 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건너 암남 공원으로 향했다. 바닥이 유리로 된 크리스탈 크루즈를 탔는데, 가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좌우 창밖과 발밑으로 보이는 풍경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금세 케이블카는 암남 공원 탑승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송도 베이 스테이션 2층 클램 마켓에서 점심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벚꽃 연금’의 주인공 장범준의 목소리는 달달했고, 맥주 한 모금에도 우리 행복의 도수는 높아만 갔다. 소나무와 벚꽃나무, 승객을 싣고 부단히 오르내리는 스키틀즈 같이 생긴 케이블카, 걸음마를 겨우 뗀 아이와 물비늘 반짝이는 옥색의 파도까지. 창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만약 ‘행복’에 대해 글을 써야 할 때, 뮤즈가 나타나 내게 영감을 던져준다면 바로 이런 장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얼굴 가득 상기된 행복이 따뜻해서 우리는 바람을 피하지 않았다. 암남 공원에서 다시 송림 공원 방향으로 돌아가는 케이블카를 탔을 땐, 우리는 창밖 풍경을 스마트폰 대신 눈에 담았다. 바로 그때, 발밑 유리로 보이는 바다의 물비늘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떠올랐다. 지극히 반짝이면서도 눈부시지 않는 물비늘, 그 빛의 부스러기들이 뮤즈가 내게 던져준 단어들이고 문장들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근처 카페 TCC에서 더치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어딘가 먼 곳을 헤매던 그 시절, 내가 원했던 ‘여행다운 여행’이란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토록 믿었던 그 여행들의 정체는. 무작정 떠나 비척비척 걷고, 돌아와서는 허무의 얼룩만 덕지덕지 남겼던 그때 그 여행들은.

정지용 시인은 여행을 ‘이가락(離家樂)’이라고 정의했다. 말 그대로다. ‘집을 떠나는 즐거움’ 여행에 내 인생의 일부를 냅다 내맡겼던 과거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아주 근사하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그저 집을 떠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이 된다는 말, ‘이가락(離家樂)’ 여행을 통해 인생이 달라지기를, 대단한 글을 적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정작 일상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나를 기다리던 뮤즈에게는 소홀했다. ‘이가락’의 차원에선, 그저 바람이나 쐴까 싶어 송도로 향했던 것도 분명한 여행이었다. 뮤즈를 찾아 나선 여행.

송도의 바다 위, 뮤즈가 뿌려둔 셀 수 없이 많은 영감의 조각들을 건지며 나는 다짐했다. ‘여행다운 여행’을 변명 삼아 엉뚱한 곳에서 뮤즈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말자. 안도현 시인의 시구처럼, 이제 기다림이 아름다운 시절은 갔다. 뮤즈가 찾아와주길 기다리지 말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뮤즈를 찾아 나서자. 거창할 필요도 없이, 그저 집을 나서기만 하면 어디서든 조우할 수 있는, 친절한 나의 뮤즈를.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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