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서 지는 법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꼰대들의 말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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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적으로 초중고 12년 학창 생활이 다 우울하긴 했다. 대한민국 학교 생활이란게 다 그렇겠지만, 이문열이 희대의 역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쓴 이후로부터도 하나도 달라진 바 없이, 학교란 이 우울한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이쁘거나, 잘생기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집에 돈이 특출나게 많거나,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거나 하지 않으면 그 ‘나머지’ 집합에 속하는 아이들은 상당히 피곤한 삶을 살게 된다.

특출나게 우울한 시절을 꼽아보라면 정말 사춘기에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이란 괴롭힘은 다 당해본 중학생 시절이나, 적응도 안되는 학교에 가서 역시 공부를 좀 못했던 죄로 완전히 공부만 못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반에 2년을 쳐박혀서 지내야 했던 시절을 꼽을 수도 있겠다만, 오늘 주제에 부합하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로 시계바늘을 돌려야한다.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바로 ‘청소’이다. 일사분란하게 사람마다 팀을 나누고 조장을 정해서 구역을 나눠 청소를 하는 것. 아침에 등교해서 하고, 오후에 하교하면서 하는, 거의 나는 학교에서 제일 많이 했던 것이 청소고, 또 그만큼 청소를 별로 좋아하지를 않았다.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야 그 엄격하고 일사분란했던 청소 시스템이 대한민국 군대의 임무분담제 담당구역 청소 시스템과 완벽하게 똑같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초등학생 때 했던 그 청소는 더 혐오스럽고 싫은 기억이 되었다.

근데 안타까운 건 사람이 좋아하는 일과 적성에 맞는 일은 따로 있듯이, 사람이 싫어하는 일이 꼭 적성에 맞지 않으리란 법도 없는 일이란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초등학생인 나는 청소를 잘했다. 그것도 그냥 잘한게 아니라 엄청. 농담이 아니었다. 청소를 너무 잘했다. 이 재능을 깨닳은 건 역시 그 군대식 임무분담제 담당구역 청소 시스템 하에서였다. 나와 번호가 붙어있던 친구 한명이 둘이 짝을 지어 계단 청소를 맡게 됐다. 평소 그친구나 나나 까불까불하긴 해도 시키는 건 그냥 곧이 곧대로 ‘아, 해야되는 건가보다’ 하고 해내는 성격이었던게 화근이었다. 다른애들은 그냥 대충대충해서 제일 빨리 끝낸다는 계단청소였건만, 왜 우리는 둘 중 한명이라도 뺀질거리는 성격이 되질 못했던 걸까.

우리 둘이 보인 청소에 대한 재능과 열정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이 일개 초등학생, 아동이 보인 것이라기엔 정말 믿기지가 않으리만치 말이다. 우린 정말 청소시간 내내 단 한번도 말을 하지않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나는 부드러운 마치 말갈기털로 만든 구두솔을 연상시키는 빗자루를 잡고 계단의 먼지들을 살살 달래가며 구석으로 몰고 다음 계단으로 넘기는 작업을 리드미컬하게 해냈다. 그친구는 옆에서 빳빳한 미싱용 빗자루로 미끄럼방지용 쇠턱의 틈사이에 낀 모래들을 꺼내어 내 청소를 도왔다.

지금 생각하면 13살도 안된 애들이 그렇게 청소를 했다는게 미친놈들 같다.

 

 

마치 그 계단에 있는 모든 먼지를 털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결벽증걸린 강박증 환자들처럼 우린 온몸이 먼지 투성이에 땀투성이가 되어가며 청소를 끝마쳤다. 그렇게 청소를 끝내고 나면 계단 제일 위에서부터 쓸어내린 먼지들은 계단 아래에 거의 모래성을 쌓아도 될만큼(농담이 아니라 정말 사막이라도 만들어놓은 듯한 모래의 양이었다.) 수북히 쌓여있었다. 쓰레받기에 한번에 담기지도 않는 양을 두 번 세 번에 걸쳐서 휴지통에 버리고 나와서, 우리는 마대걸레는 또 왜 그렇게 깨끗하게 빨아댔는지. 그게 무슨 고결한 자기 성취의 고행의 한 과정인 것처럼 마대 걸레를 두 번세번 빨아대서 구정물을 다 빨아낸 뒤에야 경건하게 위에서부터 또 걸레질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한 담당구역 청소와 우리의 청소는 거의 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시멘트 바닥인지 대리석 바닥인지 모르게 먼지한톨 없이 반질반질한 계단 구역은 거의 누워서 잠을 청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렇게 아침에 한번 청소를 마치고 나면 그제서야 땀에 먼지 투성이가 된 몸으로 반으로 복귀한 우리는, 첫날만해도 ‘아, 얘랑 별로 안친하다 보니 할 얘기도 없고 괜히 청소만 열심히 했네. 얘도 성격 참 너무 성실하네…’ 같은 생각을 했었던듯하다.

문제는 그렇게 청소를 일주일 마치고 담당구역이 돌아가게 되니, 담임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의 청소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거기에 하필 우리가 청소를 했던 딱 그 시기에 교감 선생님이 지나가며 ‘이 계단은 참 깨끗하군요’를 시전해버린 바람에… 우리는 담당구역이 어느 순간 그 계단으로 고정되어버렸다. 거기다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초등학교 학급회의 시간… 그 학급회의 시간에 모든 학생은 필수적으로 어떤 부서든지간에 가입해야했다. 설사 그 부서가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식물 부서에 유령 부서, 페이퍼 컴퍼니라 하더라도 말이었다. 나랑 그 친구는 단순히 청소 잘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름도 거북스런 ‘봉사부’에 부장과 회원으로 가입되어 학급을 위해 그 계단 담당구역을 청소하며 열심히 ‘봉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가 아닌 학급 부서는 우리가 유일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그렇게 되니 우리는 1년 내내 계단을 청소하며 지낸 것이었다. 그것도 초등학생이… 매일아침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초등학생 아이 둘이서 2인 1조가 되어 땀이 나게 계단을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쓸고 닦는 광경이 상상이 되는가?

나중엔 그 친구와 꽤 친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뭐 그랬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연락은 안하지만, 그때 나눴던 대화중에 기억에 남는건 ‘우리가 봉사부인가 청소부인가’ 뭐 이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진지하게 나는 적성이 청소인건가?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청소를 이 학교에서 그 친구랑 둘이 제일 잘하는 거 같은데… 이건 정말 특출난 재능 수준 아닌가? 나는 나중에 청소부를 해야 되는건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던데…

그때는 몰랐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는 걸.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 잠깐, 태클을 걸고 내게 반박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니? 이 무슨 소리입니까? 하고.

그럼 되묻고 싶다. 직업에 귀천이 없으면, 쓰레기 청소부 나 하수구 청소부, 3D기업이나 중소기업 노동자, 당신은 왜 안합니까? 적성이나 꿈같은 소리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하면 대우도 안좋고 복지도 안좋고 버는돈도 안좋은데 지켜보는 인식까지 안좋으니 안하는 거 아니겠는가. 직업에 귀천이 없으면 왜 당신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대기업 입사 준비하겠는가, 그 귀천 없는 청소부 당신이나 하지.

내가 초등학생 시절 그렇게 1년간 청소를 하며 느낀 게 있다. 보상 없는 개고생을 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고, 진짜 개로 본다는 것을. 그걸 이미 초등학생 때 알았다. 나랑 친구가 한 청소는, 결과적으로 보자면 안해도 될 법한, 규정대로 받는 페이 이상을 오버해서 일하는 노동강도였다. 그 이상을 일해서 우리에게 돌아온 혜택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청소를 좀 잘하고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그 고된 청소를 1년간 반 강제로 강요당했다. 다른 애들은 다른 담당 구역에서 열심히 꿀 빨면서 건성으로 청소하고 아침 1교시를 준비할 시간에 말이다. 아무도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았고, 그 깨끗한 계단을 밟고 등하교를 하는 아이들 누구도 고맙단 인사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반 아이들 조차도. 담임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아이들 앞에서 우리를 자주 치하하긴 했지만, 고작 그 치하 때문에 우리와 담당구역 청소 한번 바꿔보겠다는 멍청한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멍청한 건 그만두지 못하는 우리였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공개적인 치하가 아니라 거의 시급으로 쳐서 받았어야 될 월급이었다. 아니면 ‘너무 그렇게 열심히 과도하게 청소를 하면 아침 수업에 지장이 되니 너희들은 다른 쉬운 구역으로 청소구역을 옮기렴’ 하고 자상하게 조치해주는 행동이었거나 말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양심에 손을 얹고 그 귀천이 없는 더럽고 고된 육체노동 직업들을, 예를들면 쓰레기처리장 분류요원이나 하수구 청소요원이나, 당신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다음에야 ‘내가 하겠소’ 하고 나설 수 있는가? 자기가 한다고 하지도 못할 일을, 누가 봉사활동 차원에서라도 하루 시키면 오만상을 찌푸릴 일을 그렇게 손쉽게 귀천이 없다고 얘기하는 건 위선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그 직업의 복지 수준이나 급여 수준이나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평균 학력 수준이나, 사회적인 시선이나 명예를 특별히 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올리거나 하고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싶지도 않다. 그러니 그냥 귀천이 없다고 이야기하자. 나는 계속 귀한 일을 하고, 저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직업에 귀천은 없지요’ 하며 불만 가지지 않도록.

직업엔 귀하고 천한 것이 분명히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귀한 일인지 천한 일인지를 반드시 인지하고 알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천한 일이라면, 사회에 더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느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 내가 대신 해주고 있다. 그러니 나는 복지도 더 받아야겠고, 급여도 더 받아야겠고, 만일 길거리를 지나다니는데 누가 날 손가락질한다면 반드시 법정에서 모욕죄로 세워야겠다. 내가 사회가 공공연히 천하게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겠다. 그게 싫다면, 일 안하겠다.’

청소부와 쓰레기 분류요원들, 하수구 청소부들이 모조리 파업하는 세상을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없겠지. 그렇다고 그런 세상에서 내가 하겠소, 하고 나설 생각도 없겠지. 왜냐면 직업엔 귀천이 없고, 그러니 그 귀천없는 직업은 누군가가 항상 박봉에 무복지로 시달리며 일하고 있으니까.

보통 사회에서 고귀한 직업입니다, 하고 치켜세우는 직업은 항상 다 뒤가 구린 법이다. 농담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3D 업종 노동자들, 중소기업 노동자, 마찬가지 각종 쓰레기 관련 직업들, 한국에서 유독 귀천이 없다고 치켜세우는 직업들을 보라. 복지와 노동의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다. 이들은 그 귀천이 없다는 의식 때문인지 딱히 사회에 반항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뿐만인가? 백의의 천사라는 간호사들. 인력이 부족해서 임신도 돌아가며 순번제로 해야되는 기괴한 문화가 생기더니 태움이라는 문화까지 생기고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간호사들이 생겼다. 시민들의 진정한 영웅이라는 소방대원? 지방 소방대원들은 보급도 제대로 안돼서 목장갑을 끼고 화제를 진압한다.

소방관에 대한 인식과 처사는 미국과의 비교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에서는 소방관을 보고 직업엔 귀천이 없다느니 영웅이라느니 낯간지러운 소리따윈 하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소방관을 뭐라고 부르느냐? ‘미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들’ 이라고 부른다. 농담이나 립서비스가 아니다. 소방관은 실제로 섹스어필의 상징이자 강하고 터프한 노동을 하지만 그만큼 먹고살만하게 돈도 버는 직업으로 인식된다. 복지도 급여도 제대로 지급이 안되는 한국이니 소방관들 붙잡을만한 건 결국 ‘영웅’ 이라는 낯간지러운 명예밖에 없는 것이다.

소방관까지 갈 것도 없이 군인만 봐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군인들이 터프하고 괴로운 직업이라는, 소위 천한 직업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군인에게 당신의 복무에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할 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서비스. 천한 일을 대신해주는 우리를 위한 서비스.

한국에서는 소위 ‘국가의 아들’이라며 급여도 복지도 서비스 개념도 없이 그냥 잡아다 마구잡이로 청춘들을 갈아대며 쓰고는, 다치거나 고장나면 ‘이 사람은 국가의 아들이 아닙니다, 당신의 아들입니다’ 라는 개드립을 시전한다. 신성, 국민의 의무, 이런것들을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군대가 갈곳이 못되고 군인이 할게 못된다는 걸 감추는 위선인 것이다.

군대와 소방관을 비롯한 각종 3D 업종의 노동자들은 이제 앞에 나서서 말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천한 일이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서비스하고 있다. 이것은 봉사활동이 아니다. 난 내 몫의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다. 고 말이다.

예전부터 난 10만원권이 생긴다면 그 지폐에는 전태일 열사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폐에는 전태일 열사의 그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최고액권, 10만원권. 그것이 만들어진다면, 돈을 쓰는 이에게 이 돈의 가치,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가치를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 그와 그의 말이 꼭 들어갔으면 한다.

지금 이순간도 사회 곳곳에서 천한 일을 하며 나와 사회를 대신에 서비스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짧지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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