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ightest Trip

밝은 여행

 

‘여행’, 참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1989년 1월 1일을 기해서 ‘여행자유화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니까 그전에는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없었다는 말. 관광 여권은 83년에야 처음 생겼고 발급 나이는 50세 이상으로 제한되었다. 게다가 관광 예치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납입했어야 했다고 하니, 당시 해외로 나갔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최근 일 년 단위, 해외로 나가는 사람의 수는 1,500만 명으로 추정된다.

 80년대 연간 해외 출국자 대비 30배가 넘는 수치다. 즉, 우리나라 인구 3명 중 1명이 ‘한 해’ 동안 해외를 다녀온 것. 이것을 누적으로 생각해보면, 중복 수치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 이미 온 국민이 몇 번씩을 해외에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이러한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우리는 몸소 느끼고 있다. 일이 힘들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우리는 “아, 여행이나 갈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누군가는 경험과 재미를 위해, 또 누군가는 기분 전환을 위해. 추억과 낭만, 자신을 위로한다는 이유로도. 그래서 여기저기엔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들로 한가득이다.

‘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여행’만이 ‘답’인 것처럼

여행을 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앞사람의 가방에 부대끼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하고 가야 하는 지옥철이나 출근 버스에서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으로 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과 나를 단절해 줄 음악으로 귀를 막고, 감은 두 눈으론 바닷가에 누워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떠난다. 일을 다니면서, 또는 일을 그만두고서. 어떤 친구들은 여행을 가기 위해 회사를 관두기도 한다. 멀찌감치 예약해 놓은 여행 티켓을 바라보며, 상사의 잔소리는 한 귀로 흘려들을 수 있는 힘이 생길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다. 가기 전의 설렘은 곧 잊히고, 돌아오기 전 날부터 마음은 요동한다. 여행을 다녀오면 무언가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일상은 어째 더 답답하다. ‘여행’이 ‘답’ 일 거란 생각. 다녀오면 무언가 바뀌어 있을거란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우리는 이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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