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ting The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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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여럿 있기 마련인데, 대체로 보고 즐기는 선에서 만족하며 산다. 매일 바튼 숨으로 바쁜 삶을 사는 대부분의 우리에게 도전은 어쩌면 대리만족의 영역. 그래서 유튜브가 대세일지 모르고. 먹고 입고 게임하고 여행하고 일탈하는 남을 보면서 내가 당장 하지 못하는 관심 분야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약간의 숨통을 틔운다. 용역이나 이벤트, 역할 대행업체들의 성행을 지나 이제는 ‘자아 대행’이 각광받는 시대다.

자아는 어떤 행동뿐 아니라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서 실현되기도 한다. 심지어 생소한 물건을 사는 데에도 도전정신이 필요하며, 사서 사용하기까지 어려운 용기를 쥐어짜야 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쓰지 않던 물건의 소유와 사용은 하지 않던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까. 예절과 규칙과 답습과 범위가 정형화된 산업 사회에서 효율을 기반으로 굳어진 관례는 강제성을 갖는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한 것이 사람들의 시선이다. 남들이 볼 때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강박은 자아에 달린 강약 조절 버튼과 같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있어도 겁 없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울창하게 자란 나무는 자리 잡은 땅의 영양을 온통 빨아들이고 하늘로부터 해를 다 가린다. 그 주위 서늘한 그늘에서는 새 식물들이 만개하지 못한다. 그처럼 소위 386이라 불렸던 세대의 양분을 나누어 받지 못한 채로 주눅 들어 자란 88만 원 세대가 작금의 핵심 노동 인력들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눈부신 성과를 이끌어야 할 30~40대 젊은 인재들은 잠재력을 확인해 볼 새도 없이 큰 나무 아래서 시들어간다. 황금세대는 한 시절에 그치고 그다음에는 하루하루 살기에도 황급한 세대만이 남았다.

 

알바와 인턴의 경계를 사선처럼 밟고 사는 지금 사회초년생들에겐 구두 신을 일이 거의 없다. 누군가의 시중을 들거나, 누군가가 쓰는 돈을 계산해주거나, 누군가의 여유와 취미를 보조하거나, 들러리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100만 원 언저리의 월 급여를 이어가며 생활을 팍팍하게 만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여지를 주지 않는다. 통장에는 얼마의 금액이 잠시 들락거릴 뿐, 쌓여가는 건 궁핍과 초라함이다. 내일의 희망이 구체적인 청춘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구두를 신을 수 있겠지만, 남을 위해 내내 서거나 뛰며 발이 퉁퉁 부울만큼 열심히 살아도 앞이 불투명한 청춘에게 구두는 선뜻 사 신기 어려운 신발이다. 구두 신을 자리에 갈 기회가 별로 없다. 구두를 꼭 신어야만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보기 위한 공평한 시작점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인의 경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소셜커머스에서 폭탄 딜 구두를 검색해 신는 수밖에.  누렇게 뜬 낯빛과 차가운 세상의 대우를 생각하면 청춘이 아니라 황동冬黃이 더 맞는 말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일상처럼 구두 신는 삶이란 프로로써 한 걸음씩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일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 형성된 규범과 풍토가 구두를 강제하는 부분이 있고, 일탈을 꿈꾼답시고 계약 미팅에 슬리퍼를 끌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꼭 구두만 그런 건 아니다. 안전화나 운동화래도 상관없다. 각 영역마다 규범이 있고 이에 상응하는 행동과 복장에 따르는 것. 신발은 그런 상징 중 하나로 발이 우리를 전진토록 하니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 뿐.

일을 위해 구두 신을 기회. 구두에 신경 써야 하는 규범적 강제성. 그런 제약에 구속되고 싶은 것이 울창한 나무 아래 가려진 묘목들의 바람이다. 기술 하나만 있어도 평생 살던 시대는 진즉 지났고, 성장 시대의 기회는 이미 넘치도록 분배되었다. 기본 2개 국어에 몇 개의 자격증, 해외 연수, 대기업 인턴, 굵직한 대외활동까지 갖춘 화려한 스펙에도 기회가 좀체 오지 않는 저성장 사회. 고 스펙을 관습처럼 쌓은 인재가 넘쳐나지만 최저임금 향상 이슈만으로도 사회 전체가 불안정하게 들썩거리는 경제구조. 단순 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체하여 필연적으로 직접 생산 외 노동인구가 늘어났다. 구두 신을 사람은 많아졌지만 구두가 어울리는 자리는 포화상태. 구두 만드는 회사는 수십 배 늘어났지만 구두 신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자유와 개성을 상징하는 요즘 세대들이라지만, 정작 그들에게 절실한 것 중 하나가 통념에 의한 강제적 구속이다. 신발 취향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품격 있는 구두를 신어야만 하는 비즈니스 세계의 정식 일원이 되는 일. 구두를 신고 스타팅 발판에서 힘차게 발을 구르는 일. 꿈을 가지라는 모호한 조언은 얼마나 속절없는지. 꿈은 클수록 좋은 게 아니라 구체적일수록 좋다. 세세하게 쪼개어 당장 접근 가능한 단계부터 밟아야 한다. 누군가의 시선에선 한심하고 초라해보는 어떤 젊은이에게도 누구 못지않은 꿈이 있다.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당장 오늘 저녁 마리당 만 오천 원이 넘는 치킨을 배달비까지 얹어서 걱정 없이 시킬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꿈꾸는 사람도 있다. 거대하고 위대한 가치의 실현은 특출 난 누군가의 몫으로 두어도 좋다. 이루는 성과를 경험해야 꿈꾸는 재미를 알 수 있다. 재단하고 가늠해보아 조금씩이라도 실현 가능한 꿈이 되어야 한다.

단지, 구두를 신는 것. 당장이라도 구두 한 켤레 못 사겠냐만 사고 신기 위한 목적이 달라진다면 그 구두를 신고 걷는 걸음의 활기도 달라진다. 걸음에 설렘이 실린다. 이 척박한 생존의 시대에서 목표 그 자체가 되어도 좋을 설렘.

골이 아닌 출발점에 서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작금. 구두 벗는 휴식보다 구두 신는 피로를 원하는 심정. 구조는 견고하고 경향은 관성을 지니고 있으니, 당장 개인 몫으로 할 수 있는 발악은 그래도 독기를 품는 것.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는 것. 사람은 언젠가 죽으니까 누군가 죽게 되면 그 빈자리는 내 자리가 될 수 있을까? 그전에 내가 죽으면 아무 소용없으니 우선 온 힘 다해 생존하기로. 나를 위해, 적당한 구두 한 켤레 사 신어보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은 위로일 듯.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구두를 사 신고 결정적인 계약 미팅을 위해 길을 가듯 걸음에 힘을 집중해보거나, 아주 유명하고 멋진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듯 스텝을 옮겨보거나. 기회라는 좁은 문을 통과할 유연한 몸놀림을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쓰잘데없어 보이는 헛짓’도 가끔 괜찮다. 좋은 구두가 사람을 좋은 곳으로 데려갈는지는 모르겠지만, 튼튼한 마음이 현실을 조금이나마 좋게 진척시키긴 하니까. 아주 조금씩이래도, 어쨌든.

분명 한탄할 것 많은 현실이다. 이미 자리 잡은 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해도 좋을 만큼 불공평한 세상이다. 걷고 뛰기 위해 신발을 신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기 위해, 지탱하고 버티기 위해 신고 있다. 그런 누군가, 어쩌면 당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다. 그러나 절망을 부러 품는 건 불쌍하다. 초라해질지언정 불쌍해지지는 말자. 도움은 받더래도 동정은 거절하고 싶다.

최악의 상황에, 무너질 심정이 들면 구두 한 켤레 사 신고 밖에 나가보자.  그놈의 ‘가성비’ 잘 따져서 멋지고 편한 걸로. 그렇게 구두 신은 사람으로서 하염없이 걸어보자.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나가면 온 세상 취직자리 다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중 당신 자리도 분명 있을 거니까. 마음이 구두를 신고 좋은 곳에 간다.

이것도 실상, 별 쓰잘데기 없는 권유겠지만.

간혹, 지금 뭘하고 있는지를 모아서 나중에 펼쳐보면 이들이 뭘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ATL(X), 물 밑에 있고자 하는 것은 끝끝내 우리의 원칙이자 철학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확보된 우리의 역량과 기록들은 우리를 물 위로 끌어 올릴 것입니다. 대항군, 병맛, 합리주의, 공리주의, 통섭, 진정성, 투명성, 헌신. 각기 다른 표현들이지만 솔직한 언어로 배너의 카피를 작성하고, 그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치부 또한 거리낌 없이 노출하며. 미래에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지난 시간동안 한결같이 지켜왔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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